700,000원짜리 글

2월 3일 금요일

낙성대 자취방

통근을 위해 계약했던 낙성대 원룸의 계약기간은 2월 28일까지. 짐을 빼야 된다고 생각하면 여기에 있을 수 있는 날은 3주 남짓 남았습니다. 근처에 사는 직장 동료들과 함께 근처의 맛있는 음식점과 펍에서 함께했던 즐거운 시간들, 자취방에 친구들과 동료들을 데려와서 보드게임도 하고 음식도 나눠먹던 생활들을 이제는 놔줘야 한다고 하니 정말 아쉽습니다.

3월에는 복학을 해야 합니다. 동료들의 이직/복학 시기와도 맞아서 다들 낙성대를 떠나 편한 위치로 옮겨갑니다. 제 학교 또한 마포에 있기 때문에 굳이 낙성대에 계속 남아서 40분 걸려 통학할 이유가 없겠습니다. 그럴 바에는 본가에서 50분 통학하는 게 낫겠습니다.

그런데 본가에는 제 공간이 있기는 하지만 제가 마음대로 쓰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누군가를 데려오는 건 생각하기 힘듭니다. 음악을 틀어 두고 새벽까지 작업한다거나 하는 건 실례가 됩니다. 또한 지하철이 피해가는 위치에 있어서 서울 어딘가를 가려고 하면 기본 40분은 잡아야 하는 곳이라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습니다. 이외에도 여러 이유가 있지만 통학에 편도 50분이 걸린다는 것과 제 공간을 마음대로 쓰지 못한다는 점 때문에, 자취를 2년 더 하기로 결심하고 새로 살 집을 찾기 시작합니다.


2월 6일 월요일

자취를 2년 더 하겠다는 제 결정에 어머니께서는 꽤 아쉬워하셨습니다. 보증금도 월세도 제 돈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달마다 비용이 나가는 걸 막을 수 있으면 막는 게 좋겠다는 의견을 주셨습니다. 하지만 그런 이유보다는 제가 없었던 기간 동안 본가에 꽤 활기가 사라져서 그랬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좋은 매물을 함께 알아봐 주시고 부동산도 같이 다녀 주셨습니다. 참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모아 둔 돈이 생각보다 꽤 있어서 전세를 알아봐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막연하게 대출 금리를 알아봤습니다. 청년을 위한 전세대출 상품은 상대적으로 저금리로 제공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버팀목 전세자금 대출의 경우 연소득이 5,000만원을 초과할 것이기 때문에 신청할 수 없다고 보고, 카카오뱅크 대출을 알아봤습니다.

장기미거래로 계좌가 잠겨 있어서 정확한 한도는 알아보지 못했지만, 신청 페이지 메인에는 최저 4.42%의 금리최대 2.22억원까지 가능하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이 정보를 보고 금리를 4.42%로 하여 전세방을 구했을 때 달에 얼마를 내야 하는지를 계산했습니다. 보증금 2억짜리 집을 월 이자 48만-55만 정도에 살 수 있는 수준이었습니다.

별개로, 낙성대에 있던 짐 40% 가량을 본가로 가져왔습니다. 집이 꽤 허전해졌습니다.

오늘 한 일

  • 원래 살던 집에서 짐을 40% 뺌

2월 7일 화요일

수천만 원이 들어 있던 적금을 깼습니다. 만기를 채우지는 못했지만 어차피 이자율이 0.9%밖에 안 돼서 깨려고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전세계약금이 필요할 경우 이체하기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전셋집을 알아보려니 전세사기가 걱정됩니다. 인터넷을 뒤지다가 HUG 전세사기예방센터라는 사이트를 찾았습니다. 전세사기 유형별 사례 및 대처방안이 부동산 지식이 없는 저 같은 사람도 이해하기 쉽게 적혀 있었습니다. 여기 적힌 내용을 꼼꼼하게 읽어봤습니다.


2월 8일 수요일

직방 앱과 네이버 부동산 앱은 나름 괜찮지만, 여러 집을 비교분석하기는 힘듭니다. 제 대출 정보와 연동해 월 얼마를 내게 될지 환산해 주는 함수를 만들고 여러 집들을 비교해 보기로 합니다.

여러 지역의 집을 알아봤는데, 저 정도의 돈을 주고 2년 사는데 학교 바로 앞 정도가 아니면 많이 후회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대흥역 근처로 계약하기로 마음을 굳힙니다.


2월 9일 목요일

본격적으로 집을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학교에서 도보 3분 거리의 집 한 곳을 마음에 담아 두고, 부동산을 방문했습니다.

전체적으로 희고 화사한 분위기에 전보다 꽤 넓직한 집이었습니다. 모니터 두 개를 쓰기 때문에 책상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공간 자체가 넓어 부엌 맞은편에 책상을 따로 놓고 저 책상은 다른 용도로 쓰면 되겠다 싶었습니다.

이전 자취방은 원룸이라면 당연하겠지만 가로 1.2m 세로 1.2m 정도의 작은 화장실이 있었습니다. 어느 정도냐면 키 180cm의 주취자를 눕혀 놓고 세척하기에는 꽤 무리가 있는 정도입니다. 이곳은 이전 자취방 화장실의 두 배 정도 크기에 보일러실까지 있어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게다가 싱크대도 넓고 인덕션도 두 구, 엘리베이터도 있습니다.

등기부등본을구가 비어 있었습니다. 따라서 설정된 근저당권이 없다는 뜻입니다. 근저당권이 없다는 뜻은 집주인이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았다면 집주인이 대출금을 제대로 갚지 못했을 때 집이 경매에 넘어갈 수도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합니다.

원래대로라면 학교 주변 다른 부동산도 돌아보려 했지만 이곳이 꽤 마음에 들었고, 서울 부동산들이 항상 하는 ‘빨리 계약해야 한다’는 말에 못 이겨 계약을 체결합니다. 임대인께서 직접 오셨고, 신분증을 보여주셨습니다. 여기까지는 적어도 제가 아는 전세사기 사례와 예방법들에 관한 지식 내에서는 별 문제가 없었습니다.

전세보증금은 2억원. 계약금은 여기의 10%인 2,000만원입니다. 작은 금액이라고 할 수 없는 돈이 통장을 빠져나가고 나니 왠지 모르게 불안합니다. 2년 살 집을 이렇게 막 결정해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까 보고 온 것보다 집이 좁은 것 같고, 역에서 좀 먼 것 같기도 하고, 내가 모르는 사기 수법이 있으면 어떻게 하나 같은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이미 계약은 해 버렸고, 이제는 전세대출을 알아봐야 할 때입니다.

계약을 체결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중 어머니께서 ‘버팀목 전세자금 대출이 되지 않느냐, 퇴직했기 때문에 근로소득은 없는 것으로 볼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마침 6시 직전이라 은행에 문의전화를 걸 수 있었습니다. 현재 퇴직자라면 근로소득을 0으로 보고 버팀목 대출을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렇게 하면 연이율은 2.4% 이하로 줄어들고, 카카오뱅크의 4.44%보다는 두 배 적은 이자를 낼 수 있습니다. 이쪽으로 알아보기로 합니다.

늦은 시간이라 다음날 은행에 가 보기로 합니다.

오늘 한 일

  • 전세계약 체결 (전세보증금 2억원, 2023년 2월 25일부터 2년 계약)
  • 계약금 입금 (전세보증금의 10% = 2,000만원)

2월 10일 금요일

새로 살게 될 집과 가까운 은행에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바쁘기도 하고, 우리은행 서강대지점은 사람이 항상 많기 때문에 높은 확률로 헛걸음질을 하게 될 것 같습니다.

우리은행 서강대지점에 전화를 해 봅니다. 대기 중인 고객이 51명이라고 합니다.

한 시간 후에 다시 전화했습니다. 대기 고객이 얼마 없었는데 그마저도 빠르게 빠졌습니다. 알고 보니 중앙 고객센터 같은 게 있고, 각 지점으로 로드 밸런싱 같은 걸 하는 것 같았습니다. 고객센터 직원 분께서는 제 실행예정일이 2월 25일이라는 말을 들으시고는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고 약간 당황하셨습니다.

서강대점으로 연결을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서강대점은 대출 쪽 직원이 한 분밖에 안 계신 곳이고, 그마저도 계속 통화중이셔서 실패했습니다. 서강대지점 근처 다른 지점에 문의드리고 싶다고 말씀드렸더니 신수동과 대흥동에는 지점이 없고, 공덕동에 금융센터가 있다고 하십니다. 그쪽으로 연결을 시도하셨으나 여기도 통화 중이셔서 실패했습니다.

아무래도 전화상담이나 방문상담 모두 어려울 것 같아서 서강대점에 예약을 잡았습니다. 오늘은 시간이 없었고, 가장 빠른 날짜는 다음 월요일이었습니다. 인터넷에서는 넉넉하게 대출 실행 2주 전에 은행을 방문하면 좋다고 되어 있었습니다만 다음주 월요일이면 잔금일로부터 2주 미만으로 남게 되기 때문에 불안해지기 시작합니다.

그 전에 제가 할 수 있는 게 있는지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버팀목 전세자금대출은 주택도시기금이 보증공사와 은행을 통해 제공하는 대출상품입니다. 대출 프로세스는 대략 아래와 같습니다.

문서뷰어

위 프로세스의 ‘자격 확인’ 단계 중 ‘자격심사’와 ‘자산심사’는 미리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바로 주택도시기금의 인터넷대출신청(기금e든든) 웹사이트입니다. 빠르게 신청해 줬습니다.

대출 금융기관과 담보 종류를 선택해야 했는데, 별 생각 없이 우리은행 서강대지점과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보증을 선택했습니다. 그러다 전세대출을 이미 받아 본 친구의 ‘HUG는 2주만에 보증이 안 나올 것 같다’는 말에 대출신청을 취소하고 한국주택금융공사(HF)로 다시 넣습니다.

신청한 즉시 부적격 판정이 나왔습니다. 제가 국민임대주택에 살고 있고, 이미 기금 수혜를 받고 있기 때문에 부적격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낙성대로 이사 오기 전에는 가족과 함께 국민임대주택에 살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아서 의아했습니다. 여하튼 주소 변경 내역이 포함된 주민등록초본을 제출하여 해결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소명자료를 제출하라는 고지가 왔습니다. 저는 최근에 창업하여 개인사업자가 되었습니다. 사업장을 임차했다면 보증금도 재산으로 보므로 사업장의 임대차계약서를 제출하라고 합니다. 재산이 3.6억 정도를 넘으면 안 되는데, 그랬다면 제가 대출을 알아보고 있지는 않았을 겁니다. 바로 제출합니다.

플랜 B 준비

아직 2주가 간당간당하게 남아 있기 때문에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카카오뱅크 거래제한을 푸려고 시도해 봅니다. 공과금 고지서를 제출했는데, 이사올 때 이름을 바꾸지 않은 게 마음에 걸립니다. 그래서 카카오뱅크에 전화문의를 해 보니 이름이 다르면 어렵겠다고 하십니다. 다른 해제 수단으로는 6개월 내에 납부한 세금 영수증이 있는데, 2월으로부터 6개월 전이면 작년 8월입니다. 7월에 납부한 종합소득세 영수증밖에 없습니다. 다행히도 종합소득세는 연 1회만 내는 세금이기 때문에 괜찮다고 하십니다. 바로 제출하고 거래제한이 풀리기를 기다립니다.

오늘 한 일

  • 확정일자 발급
  • 기금e든든에 대출 신청
  • (플랜 B) 카카오뱅크 거래제한 해제를 위해 공과금 고지서 종합소득세 납부증명 제출

2월 11일 토요일

13일이 되기 전까지는 할 수 있는 게 없는데, 13일은 잔금일로부터 12일밖에 안 남은 날입니다. 아무래도 부족할 것 같습니다. 저의 이런 불안감을 알고 계셨는지 어머니께서 저도 모르는 사이에 부동산에 전화드려 잔금일 연기에 대해 여쭤보셨던 것 같습니다. 임대인 분과 합의해 입주일을 2월 28일로 연기했습니다.

부동산을 다시 방문해야 했습니다. 2,000만원이 걸려 있는데 한시라도 빨리 가야 할 것 같아서 택시를 타고 갔습니다. 3일이 늘어난 게 얼마나 큰 영향을 줄지는 모르겠으나, 최후의 보루 카카오뱅크도 적어도 15일 전에는 대출 신청을 넣어야 한다고 하여 아주 약간의 위안을 얻었습니다.

또한 HF 보증은 저는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HUG는 건물의 신용을 보고, HF는 세입자의 소득을 보는데, 버팀목 대출이 승인받는 조건은 제 근로소득을 소득심사에서 제하는 것이고, 그렇게 하면 저는 거의 무소득자가 됩니다. 이렇게 되면 HF 보증으로는 제가 필요한 만큼의 대출을 받을 수 없습니다. 무소득자의 보증한도는 4,500만원에 그치기 때문입니다. 보증을 바꿀 수 있는지 은행에 가서 물어보기로 합니다.

이제 월요일이 되기 전까지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2,000만원도 잃고 집에도 입주할 수 없는 상황이 생길까봐 너무 불안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자러 가기로 합니다.

오늘 한 일

  • 입주일 연기 (2023년 2월 25일 → 2023년 2월 28일)
  • 새 계약서에 대한 확정일자 발급

2월 13일 월요일

일어나자마자 다음 순서로 은행들을 방문했습니다.

  • 신한은행 대흥역점
    • 개장시간에 맞춰 갔으나, 잔금일자 2월 28일은 어렵다고 합니다. 신한은행 거래내역이 없어서 곤란할 것 같다는 말도 어렴풋이 들은 것 같습니다.
  • 우리은행 서강대지점 (예약)
    • 여기도 2월 28일은 어렵다고 합니다. 근처 다른 지점이 있냐고 여쭤봤더니 신촌역 금융센터를 추천해 주셨습니다. 빠르게 출발합니다.

그 와중에 카카오뱅크 거래정지가 해제되었습니다. 카카오뱅크는 잔금일 15일 전까지만 신청이 가능하니, 오늘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빠르게 대출한도를 알아봤으나 1억원까지만 나온다고 합니다. 나머지 1억원은 제 재산을 어떻게 영혼까지 다 끌어모으면 마련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러면 등록금까지 낼 돈은 없어집니다. 게다가 금리가 비쌉니다. 버팀목으로의 대환 대출은 이사를 또 가지 않는 이상은 어렵습니다. 카카오 대출은 플랜 B로서 두기로 마음을 굳히지만, 오늘이 지나가면 사라지는 선택지라는 게 부담을 줍니다.

이후에 은행 몇 곳을 더 방문합니다.

  • 우리은행 신촌금융센터
    • 여기도 어렵다고 합니다. 서강대지점을 추천해 주십니다. 이미 다녀오는 길이라고 하니 연세대 서강대에서 안 돼서 이쪽으로 오시는 분들이 많은데 안타깝다고 하십니다.
  • 우리은행 공덕동효성금융센터
    • 번호표를 뽑고 조금 기다렸는데, 여기도 안 됩니다. 적어도 1달 전에는 오셔야 한다고 하십니다.
  • 신한은행 마포지점
    • 어렵다고 하십니다.

5연속 거절을 당하고 여의도, 망원, 시청을 돌면서 모든 은행을 방문해 보기로 합니다. 본가에 5개 은행에서 안 된다고 전화드렸더니 어머니께서도 알아봐주신다고 하십니다.

  • 우리은행 아현동지점 (전화문의)
    • 충정로 쪽으로 이동하면서 전화문의를 드렸는데, 어렵다고 하십니다.
  • 우리은행 망원역지점 (전화문의)
    • 안 된다고 합니다.
  • 강서구 쪽 은행 (본가에서 전화문의, 정확히 어디인지는 모르겠음)
    • 일정상 가능하지만, 매물이 너무 멀어서 관리하기 힘들기 때문에 거절당했습니다.
  • 우리은행 충정로금융센터 (전화문의)
    • 지점 직원분으로의 통화연결에 실패했습니다. 바쁘신 것 같아서 고객센터에 이후 전화해 달라고 메모를 남겨 달라고 했는데, 공덕에서 우리은행 서소문지점으로 택시를 타고 가던 도중 지점으로부터 힘들겠다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 우리은행 서소문지점 (전화문의)
    • 충정로와 마찬가지입니다.

아침 8시 40분부터 신한은행에 가서 대기를 했는데, 바쁘게 뛰어다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벌써 오후 1시입니다. 전화를 몇 통을 돌렸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은행 고객센터 통화연결음이 정말 듣기 싫어지고 매번 앞에 있는 50명의 고객들을 기다리게 만드는 로드 밸런싱이 너무나도 야속해집니다.

엔드게임

몇 시간 동안 외판원 순회를 하고 있자니 희망이 없는 것 같습니다. 슬슬 선택해야 할 시간이 다가옵니다. 당장 두 가지 정도의 방법이 떠오릅니다.

  • a) 잔금을 어떻게든 치루고 이후에 버팀목 전세자금 대출을 알아본다(3개월 내).
    버팀목 대출은 잔금일 이후 3개월까지도 신청이 가능합니다. 단, (보증금) – (제 전재산)을 대체 어떻게 구하느냐는 이제부터 생각해 봐야 합니다. 승인이 되면 최고 2.4%의 금리로 살 수 있습니다.
    지인들에게 손을 빌리기는 너무나도 미안하고, 제 나이가 그렇게 많지 않은 걸 감안하면 몇천만원을 흔쾌히 빌려줄 수 있는 사람도 없을 것 같습니다. 급기야 대부업체를 검색해보기까지 이릅니다(무서워서 문의조차 안 해보기는 했습니다). 사람이 궁지에 몰리면 이렇게까지 될 수 있다는 걸 느낍니다.
  • b) 카카오뱅크 대출을 1억원이라도 받고 나머지 잔금을 어떻게든 마련한다.
    이 옵션은 이전 옵션보다는 난이도가 약간 낮지만, 금리가 두 배 정도 뜁니다. 그리고 여전히 몇천만원을 어떻게 구할지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이 경우의 몇천만원은 그래도 열심히 일하면 1년 안에 모을 수 있는 정도의 돈인 것 같아 보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빠르게 결정해야 합니다. 오늘이 지나면 사라지는 옵션이니까요.

갈등합니다. 어떤 선택지든 인생이 정말 정말 어려워질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다른 해결 방법이 떠오릅니다.

  • c) 임대인 분과 현재 세입자 분께 위약금이라도 지불하고 입주일자를 한 번 더 미룬다.
    2억 원에서 제가 이미 입금한 계약금 2,000만 원을 제하면 1억 8,000만 원입니다. 1억 8,000만 원에 대한 법정 최고 이율의 월 이자는 300만원입니다. 작은 돈은 아니지만, 무려 2,000만 원을 잃을 수 있는 상황에서 이 정도의 위약금을 지불하고 모든 프로세스를 다시 시작할 수만 있다면 흔쾌히 지불할 의향이 있습니다.

이미 입주일자를 미뤘다는 점에서 임대인 분께 너무나도 실례되는 방법이고, 이 방법도 나름의 불확실성은 가지고 있지만, 양해해 주신다면 저에게는 최선의 해결 방법입니다.

서강대점으로 돌아오다

원래 저는 문제 상황에서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잘 빌리지 않는 성격이지만 지금은 그런 걸 가릴 때가 아닙니다. 일단 입주일자를 언제로 맞추면 대출이 실행될 수 있을지 알아보기 위해 우리은행 서강대지점으로 돌아왔습니다.

대출 상담 직원 분과 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상황을 설명해 드렸더니 3월 10일 이후 입주할 경우에는 괜찮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넉넉잡아 3월 17일로 잠정적으로 정하고, 필요한 서류 목록 등의 안내를 받았습니다. 이 시점에서 제가 이미 신청했던 기금e든든은 취소되었습니다.

정말 일자를 미룰 수 있을지는 불확실했는데, 직원 분께서 제가 불안해하고 있는 걸 눈치채셨는지 혹시라도 미루는 데 실패하더라도 최대한 도와주시겠다고, 사람 일이 안 될 것 같아도 막상 해 보면 되는 것들도 있더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28일에 실행되는 게 가능한지를 떠나서 정말 힘이 되는 한 마디였습니다. 이 글을 빌어 감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부동산에 위약금이라도 내고 입주일자를 미루고 싶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임대인께 여쭤보신다고 합니다.

2시가 되어서야 밥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니 학교 편의점에서 간단히 끼니를 때웁니다. 학교에서 밥 먹는 건 오랜만입니다.

여행에 가도 이 정도는 안 걸을 것

돌파구

부동산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임대인께서는 크게 개의치 않으나, 현재 임차인께서 보증금을 돌려받아야 새 집에 입주할 수 있어서 이 점이 걱정되신다고 합니다.

초조하게 기다립니다.

다행히도 현재 세입자께서 제 상황을 이해해 주시고 대출이자를 제가 대신 내는 것을 조건으로 승낙해 주셨습니다.

면목이 없었습니다. 안도의 한숨을 쉬었습니다.

당일 4시 20분에 계약서를 다시 한 번 수정하기로 합니다.

다시 주어진 한 달

부동산에 도착해서 임대인 분과 현재 임차인 분과의 삼자대면을 했습니다. 공인중개사께서 제가 너무 죄송해하는 걸 보시고 제 잘못이 아니라고 안심시켜 주셨습니다. 사실 건물 때문에 대출이 나오지 않은 이상 꼼꼼히 알아보지 않은 건 제 귀책이고 여전히 제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입주일자를 3월 17일로 미루기로 하고,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계약 변경 합의를 맺었습니다. 골자는 이러했습니다.

  • 계약금을 5,000만 원으로 올립니다.
  • 월세를 70만 원으로 하여 제가 2월 17일부터 3월 16일까지 임차합니다.
  • 3월 19일까지 전세보증급 완납에 실패할 경우, 이후 3개월 간은 월세를 120만 원으로 하여 일할 지급합니다.
  • 6월 19일까지 전세보증금 완납에 실패할 경우, 퇴거합니다.

여기서 ’70만 원’이 전 세입자 분께서 대출 이자로 합의하신 금액입니다. 임대인 분의 입장에서 봐도 거의 무상 임차를 제공해 주신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정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도 현 세입자 분께 보증금을 돌려드려야 입주를 하실 수 있기 때문에 계약금이 올라갔습니다. 이전에 입금한 2,000만 원에 더해 추가로 3,000만 원을 입금합니다. 계약금 5,000만 원의 엄청난 계약이 되었습니다.

계약서를 다시 작성하고, 확정일자를 다시 받았습니다. 오늘부터 잔금일까지의 카운터는 32일로 리셋됩니다. 은행에 전화해서 연기 사실을 말씀드렸더니 정말 다행이라며, 하지만 1개월 이전까지는 또 프로세스를 진행하기 어렵기 때문에 2월 20일에 재방문해 달라고 해 주셨습니다.

2월 20일에 은행 예약을 잡았습니다. 오늘은 편하게 잘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오늘 한 일

  • 은행 십수 곳 방문
  • 입주일 연기 (2023년 2월 25일 → 2023년 3월 17일)
  • 계약금 인상분 입금 (3,000만 원)
  • 새 계약서에 대한 확정일자 발급

2월 20일 월요일

각종 서류를 챙겨서 아침에 은행에 방문했습니다. 은행에 가서도 엄청나게 많은 서류를 작성하고 서명했습니다. 의외로 20분 가량으로 끝났습니다. 기금e든든 신청을 따로 할 필요 없이 은행에서도 처음부터 신청이 가능한 것 같습니다.

건물도 문제 없고, 제 신용도도 괜찮아서 별 일 없으면 3월 17일에 대출이 실행될 것이라고 합니다. 다행입니다. 이율은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낮은 1.2%였습니다. 한 달에 15만 원의 이자만 내면 되는데, 전에 살던 곳의 월세가 45만 원이었던 걸 생각해 보면 버팀목 대출은 정말 감사한 제도라고 느낍니다.

새로 작성한 합의서 상 2월 19일부터 이곳의 세입자는 저입니다. 새 집을 처음 들어가볼 수 있었습니다. 계약 직후에 ‘집이 좁진 않을까’ 걱정했던 것과는 다르게, 다행히도 생각보다 많이 넓었습니다. 다만 입주 청소가 필요해 보였고, 책상도 새로 사야 할 것 같았습니다.

안타깝게도 줄자를 새로 가져오지는 못해서 도어락 비밀번호만 바꾸고 낙성대로 돌아옵니다.

오늘 한 일

  • 은행에서 대출 신청
  • 새 집 도어락 비밀번호 변경

2월 22일 수요일

대출 신청 적격 판정이 됐다는 알림이 왔습니다. 사전 자산심사를 통과했다는 뜻입니다.

이제 물리적인 고생길만 남았습니다. 새 집을 청소하고, 낙성대에서 새 집으로 짐을 옮기기만 하면 됩니다.

이제 걱정해야 하는 건 이곳을 비우는 것입니다. 하루종일 이삿짐을 쌌습니다. 짐을 빠르게 옮기기 위해 25일 아침에 입주청소업체를 예약합니다.

2월 26일에는 이사를 마쳤습니다. 1년 반 만에 그렇게 정들었던 낙성대와도 이제는 작별의 시간이었습니다.


3월 17일 금요일

대출이 실행되었다는 문자를 받았습니다. 힘들었던 여정의 끝입니다. 이제는 돈 걱정 없이 이곳에서 살면서 행복하게 학교를 다닐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마치며

지난달에 했던 마음고생은 여기에 형언할 수 없을 정도인 것 같습니다. 뼈가 깎이는 일들을 겪으면서 정말 많은 걸 느끼게 되었습니다.

카카오뱅크는 ‘최저‘ 4.4%의 금리에 ‘최대’ 2.22억원을 대출해 줍니다. 하지만 그 금리와 한도가 나한테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계좌정지가 풀리기까지는 그렇게 판단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버팀목 전세자금은 퇴직자의 경우 근로소득을 제합니다. 문의해야 알 수 있는 사항이었습니다. 문의해보지 않고 버팀목이 안 될 것이라고 판단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인터넷 블로그들은 전세자금 대출은 2주 전에 신청하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건 학기가 시작되는 시기, 학교 근처 매물, 그것도 서울에서의 상황과는 거리가 멉니다. 최소한 한 달 전에는 은행에 문의했어야 했습니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만사를 안일하게 생각하지 말아야 된다는 교훈을 얻었습니다. 앞으로 제가 비슷한 일을 겪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그리고 혹시 모를 다른 분들의 고생을 막기 위해 글으로 남겨 두려 합니다.

아직은 조금 더 정리가 필요하지만 지금은 새 집에서 나름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전세계약 체크리스트 (23/3/20 추가)

  • 전세사기 예방
    • HUG 전세사기예방센터 꼼꼼히 읽기
      • 등기부등본 확인 – ‘을구’에 설정된 근저당권이 과하지 않은가?
      • 시세 확인 – 집값이 보증금보다 작거나 비슷하지는 않은가?
      • 임대인 확인 – 계약서에 적힌 임대인과 같은 사람이 와서 계약하려고 하는가? 다른 사람이 왔다면, 위임장이 있고 위임장에 찍힌 도장을 증명할 인감증명서가 있는가?
      • 이중계약 확인 – 이전 세입자가 아직 살고 있는가?
  • 버팀목 전세자금대출
    • 넉넉하게 1달~3주 전에 은행에 방문하여 상담하는 것을 추천
      • 1달보다 더 전이라면 아직 신청이 불가능할 수 있음
    • 대출 조건을 만족해야 함, 아래는 2023년 3월 기준 그 중 일부
      • 무주택자 세대주, 또는 실행일로부터 1개월 이내 세대주 예정자
      • 주택도시기금대출, 은행재원 전세자금대출 및 주택담보대출 미이용자
      • 소득 ≤ 5,000만 원, 자산 ≤ 3억 6,100만 원
        • 소득금액증명을 발급해 소득 확인 가능
        • 현재 무직자라면 근로소득을 0으로 봄
        • 기타소득의 경우 증빙을 제출해야 할 수 있음
      • 전용면적 ≤ 85㎡, 보증금 ≤ 3억 원
    • 대출 한도는 2억 원이나, 만 25세 미만일 경우 1.5억 원 이하임
      • 만 25세 미만인 경우 우대금리 0.3%p
    • 자세한 내용은 은행과 상담할 것
      • 우리 1599-0800, 국민 1599-1771, 기업 1566-2566, 농협 1588-2100, 신한 1599-8000
  • 카카오뱅크 전세자금대출
    • 1달~15일 전 안에 신청해야 함
    • 한도와 금리는 카카오뱅크 앱에서 실제로 신청서를 작성하여 확인할 것
      • 메인 화면에 나오는 것은 ‘최저’ 금리와 ‘최고’ 한도로 본인에게 적용되는 것이 아닐 수도 있음
    • 대출 조건을 만족해야 함
    • 자세한 내용은 은행과 상담할 것
      • 1599-33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