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부터 시작했던 수험 생활

이 글은 지난 1년간 필자가 집에서 무슨 짓을 하고 살았는지에 대해 기술합니다. 무언가 많이 하긴 했습니다. 글이 상당히 깁니다.

시작

아무리 요즘 고등학교가 4년제라고는 해도 누가 고등학교 3학년 생활을 1년이나 더 하고 싶을까요? 같은 성적에 작년이었다면 분명히 최초합격할 수 있었던 학과였는데 올해 모의지원 결과를 보자니 합격 확률이 나날히 떨어지다가 결국엔 아예 가능성이 없다고 뜰 때의 절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필자도 그랬습니다.

화학은 대체 뭐지…???

그 해 본 평가원 시험 중에서는 가장 잘 본 시험이 수능이었지만, 정작 그 수능 성적이 이랬습니다.

서울 상위권 대학을 목표로 하고 있었습니다만 여러 가지 이유로 높기만 했던 목표에 비해 고등학교 3학년 때 시험을 못 봤으며(후술), 암기로 거의 모든 게 해결되던 내신은 저에게는 정말 맞지 않아서 일반고에서 3등급 초반대를 꾸준히 유지했습니다. 물론 미적분I 같은 주요 과목에 5등급이 껴 있고 일본어나 정보 같이 자신 있던 비주요 과목이 1등급이고 하는 식으로의 3등급 초반대였습니다.

여하튼 필자는 재수를 할 자신이 전혀 없었기에 반수를 결심하고 2학기 휴학이 가능한 국립대에 지원을 합니다. 이 성적에 당연히 서울 상위권은커녕 서울 소재조차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최초합격을 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답장을 하지 못했습니다.

이 문자를 받고 마시고 취하는 대학 생활에 안주해 그냥 눌러앉아버리는 게 아닐까 – 부터 시작해서 과연 반수 생활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에 대해 여러 고민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결정적으로 친구들이 명문대학에 가는 게 정말 부러웠습니다.

그렇게 입학금을 반환받고, 돌아올 수 없는 재수의 강(재수강 아님)을 우발적으로 건너게 됩니다.

겨울

강대. 아 물론 제가 갔다는 얘기는 아니구요.

서울 지하철 2호선에는 수많은 명문대가 있습니다. 그 중 가장 빨리 졸업할 수 있는 곳이 바로 강대입니다.

물론 필자는 강남 대성학원에 갈 수 있는 성적조차 안 됐을 겁니다. 하지만 재수를 하려는 학생들은 보통 재수종합반이든 독학재수반이든 재수학원에 등록을 하고 1년간 고등학교처럼 다니는 것이 정석이므로 어디든 다니긴 해야 된다고 생각은 했습니다.

그래서 필자도 2월에 목동의 여러 재수학원을 돌아다니면서 설명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집이 그렇게 풍족하지 못한 관계로 집에서 독학을 하다가 나중에 재수학원에 등록하는 것으로 결정이 되었습니다.

언제까지일지 모를 집 독학을 시작하면서 자동적으로 인터넷 강의와 수능기출문제집을 활용한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때까지만 해도 단과학원을 제외하고는 11월까지 집에서 공부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2월 말은 요즘은 절대 봄이라고 할 수 있는 날씨는 아니지만 계절과 플롯의 흐름을 통일시키기 위해 소제목을 그냥 봄이라고 합시다

재수를 시작하기 전, 17수능에서의 패인을 나름대로 구체적으로 분석했습니다. 올해는 어떤 식으로 공부를 해나가야 성적이 오르겠구나 – 라는 갈피를 잡기 위함이었습니다.

국어 과목은 원래부터 4등급 정도 나왔던 과목이기에 11월에 해던 대로만 한다면 2등급은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화학도 그랬습니다. 영어도 절대평가로 전환되면서 90점이나 100점이나 같은 점수를 받게 되었고 80점대 성적을 받아도 대학에서 실질적으로 ‘까이는’ 점수가 적어서 별로 부담이 없었습니다.

문제는 수학과 생명과학이었는데, 수학은 2016년 모의고사들에서 전반적으로 쉽게 출제가 되어 왔으나 필자가 쉬운 문제에서 실수를 많이 했기에 당해 9월~11월에는 사설 봉투 모의고사를 풀면서 문제를 두 번씩 푸는 것을 연습했던 게 화근이었습니다. 17수능 수학은 절대로 쉽지 않았기에 뒷 문제를 안 보고 이런 식으로 풀어나가다가 18번을 불 때쯤 40분밖에 남지 않았던 것이었습니다. 생명과학은 지엽적인 개념을 숙지하지 않아서였습니다. 그런 이유로 수학은 일단 쉬운 문제를 빠르고 정확히 한 번에 풀 수 있는 기술을 단련해야 했고, 생명과학은 전반적으로 전체 개념을 다시 공부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습니다.

재수생은 시간이 더럽게 많습니다. …적어도 8월 정도까지는 그렇게 느낍니다.

패인을 분석하고 나서 막상 재수를 시작해 보니 쓸 수 있는 시간이 엄청나게 많았습니다. 노트북과 스마트폰의 유혹에 쉽게 넘어가는 편이고 굳이 없애기도 귀찮아서 하루하루 공부 스케쥴을 짜기로 결심했습니다.

필자는 태어나서부터 열아홉 살때까지 ‘하루 스케쥴’이라는 것을 짜 본 적이 없었습니다. 집 독학을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스케쥴을 짜 보게 되었습니다.

벽에 붙여놓고 볼펜으로 쓰기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하긴 계획표는 남 보여줄 건 아니니 저만 알아보면 됩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일어난 시간을 기준으로 당일 계획을 30분 단위로 짜고, 그대로 실전했습니다. 못 했을 경우엔 X표를 했고 다음 날에 전날 못 한 공부를 했습니다. 또한 공부하는 과목 순서는 실제 수능에서 응시하는 과목 순서대로 배치했습니다.

계획표를 짜 보고 나니 확실히 계획표를 짜서 공부하는 게, 피곤하거나 놀고 싶어서 계획을 조금만 짜더라도, 안 짜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2월에서 6월까지는 평가원 기출문제를 많이 풀고 개념을 다시 보는 위주의 공부를 했습니다. 굳이 빠르게 보려고 하지 않아도 시간이 엄청나게 많았기에 천천히 전부 두들겨봤습니다. 몰랐던 게 생각보다 엄청나게 많은 느낌이었습니다. 특히 생명과학이 그랬습니다. 개념 강의에서 교과서에 이런 내용이 나오긴 했었나 싶을 정도로 생소한 내용들이 별표와 동그라미로 등장했고, 그런 개념들은 이 때 다시 챙겨갔습니다.

3월, 4월 연합학력평가는 재수생이 고등학교 3학년 수험생(이하 ‘현역’)들과 같이 볼 수 없으니 시험이 치뤄진 다음날에 봤고, 1년 더 공부한 탓인지 한국사를 제외하고는 두 시험 모두 전부 1등급이 나왔습니다.

참고로 6월과 9월에는 학원이나 학교에서 시험을 응시할 수 있는데, 한 달 전쯤에 미리 신청해야 합니다. 응시료도 지불해야 합니다. 재수생이 현역보다 불리한 점은 수시모집을 제외하면 솔직히 이것밖에 없습니다.

여름

이 때 나태해지지 않으면 목표하는 대학은 거의 합격할 수 있을 겁니다.

국어 영역은 기분은 나쁘지만 백분위가 95.5 정도에서 반올림되면 충분히 저럴 수 있습니다.

그리고 6월 모의평가에서 쾌거를 이루게 됩니다. 수학만 빼고요. 수학 볼 때 졸았습니다. 결국 21번 29번 30번은 고사하고 18번 20번 22번(!) 26번 27번을 추가로 틀려버리는 아주 멋진 상황이 발생하게 됩니다.

그러나 ‘졸아서 4등급이었고 안 졸았으면 적어도 2등급이었을 것이다’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고, 7월에는 또 전과목 1등급을 받았습니다. 학력평가(3, 4, 7, 10월) 등급컷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걸 이 때 깨잘았어야 했는데 오히려 이 때부터 본격적으로 게을러지기 시작했습니다. 방이 더운데 에어컨이 없어서 TV가 있는 거실에 나와 공부하기 시작한 것도 한 몫 했고, 결정적으로는 실력을 자만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수험생의 적

재수생들은 다 이쯤에서 의욕을 잃는다는데 필자에게도 안 올 것 같던 시기가 그렇게 찾아왔습니다. 날마다 썼던 계획표가 점점 비었고, 어떤 날은 하루종일 휴대폰과 노트북만 붙잡고 있기도 했습니다. 나는 당장 수능을 보면 정말 잘 볼 텐데- 같은 생각을 하면서.

그래도 9월 모의고사가 다가오고 있는 것은 부정할 수가 없었으므로 슬슬 사설 봉투 모의고사를 풀기 시작했습니다. 8월 말이 되어서요.

이 수험생은 과연 9월에 어떻게 될까요? 스크롤을 내리지 말고 예측해 봅시다.

 

 

 

(미방)

 

 

 

가을

학교에 갈 낯이 없어 성적표조차 가져오지 않았습니다.

전체적으로 17수능보다 못 본 성적이 나왔습니다.

왜일까요? 6월까지 열심히 돌아본 개념이 부족했을까요? 아니면 실력이 부족했을까요?

아니었습니다. 전 과목에서 골고루 정말 말도 안 되는 실수들을 했던 것이었습니다. 틀린 16문제 대부분이 정말 터무니없는 실수들이었습니다. 어느 정도 터무니없는지 하나만 예로 들자면, 화학 I의 3번 문제에서

실선은 공유 결합, 점선은 수소 결합

분명히 실선인 결합 a를…

믿기지 않겠지만 점선으로 봐서 틀렸습니다.

어려운 문제는 다 맞아놓고(수학 21번 제외) 어떻게 남들은 일부러 틀리려고 해도 못 틀릴 문제들을 틀려놨는지 진지하게 고민해 봤고, 결국은 6~8월에 놀아서, 문제풀이에 익숙해지지 않게 되어서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될까요? 다시 문제를 푸는 데 익숙해져야 할 것입니다. 이 시기부터는 문제 푸는 데 익숙해지기 위해, 그리고 소위 ‘킬러 문항’이라고 하는 어려운 문제들을 시간 안에 풀 수 있는 실력을 훈련하기 위해 봉투모의고사 위주의 공부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기출을 풀면서 킬러 문항도 접해봤겠지만, 그냥 ‘풀 수 있는 것’과 ‘시간 안에 풀 수 있는 것’은 다르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결국 수능은 시간 싸움이니까요.

또한 단과학원을 수강하게 되었습니다. 대치동이나 목동, 분당의 단과학원들은 재수학원보다 가격이 쌀 뿐더러 잘만 수강한다면 상당히 양질의 퀄리티의 사설 문제들을 매 주 풀어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재수생 자체가 단과학원에 잘 보이지 않기에 뭔지 모를 이질감이 들 수 있으나 뭐 3달만 다니면 되니까요.

아 수시는 묻지 말아주세요. 6개 모두 논술 썼습니다. 6군데 모두 떨어졌습니다. 감사합니다.

여담으로, 불안감은 사용함에 따라서 장애물이 될 수도 있고, 연료가 될 수도 있습니다. 정확히는 불안감과 확신이 균형잡혀 있을 때 최고의 연료가 됩니다. 당시 9월 모의고사를 보고 과연 수능은 작년보다 잘 보긴 할지 엄청나게 불안했는데요, 불안하기만 했다면 과연 제가 수능에서 긴장하지 않을 수 있었을지 모르겠습니다. 확실한 건 2월~6월에 착실하게 공부했더니 6월 모의고사 성적은 17수능에서 평균 3등급을 받았다고는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좋았었다는 것입니다(수학 제외). 하면, 됩니다. 9월은 안 해서 안 된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수능까지 전력으로 달렸습니다.

수능 연기

연기 발표 당일에는 이 짓을 무려 7일이나 더 해야 된다는 사실에 절망하고 분노했습니다. 하지만 자연재해는 누군가의 탓을 할 수 있는 건 아니기에 화는 나지만 그냥 필자가 지구과학을 선택하지 않은 대가 중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탐구는 단기간에 성적을 올리기 좋은 과목입니다. 7일 동안엔 탐구 공부에 비중을 뒀습니다.

수능 당일

제가 여기서 본 건 아닙니다.

18수능은 17수능과 같은 시험장에서 보게 되었습니다. 당일 일찍 일어나 아침 5시 반에 출발해 6시에 일찍 도착해서 차에서 조금 졸다가, 7시 반에 교실에 입실했습니다. 아침은 속이 편하면서도 열량 높은 바나나 하나로 해결하고, 막대한 양의 초콜릿을 가져가 한 교시 한 교시 끝날 때마다 먹었습니다.

수능 당일 컨디션과 멘탈 관리는 정말 중요합니다. 당장 1교시 국어 첫 장에 적힌 글이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특히 1교시에 다른 수험생들이 1페이지를 다 풀고 나서 종잇장 넘기는 소리는 정말 신경쓰이는데요, 그래서 저는 그냥 2페이지부터 풀고 나서 1페이지를 풀었습니다. 그러면 종잇장 소리에 신경쓸 필요가 없어지니까요.

초콜릿은 살 안 쪄요. 살은 제가 쪄요.

점심은 평소에 먹는 대로, 피곤하지 않을 정도로 조금 적게 먹었습니다. 어차피 초콜릿이 열량을 다 해결해 줍니다. 초콜릿은 맛있습니다. 뭐 그 날 하루 많이 먹는다고 해서 살이 막 몇 kg씩 불어나는 것도 아니고 머리께서 잘 회전하시겠다는데 당연히 먹어줘야죠 어쩔 도리가 있겠습니까.

전체적으로 어렵긴 했지만, 국어 1페이지를 빼놓고는 그렇게 긴장하지 않았던 시험이었던 것 같습니다. 수능 직전까지 실전까지 연습하다 보면 분명히 본수능인데도 모의고사 푸는 느낌이 납니다. 분명히 모의고사 푸는 거 같은데 시험지 표시에 ‘모의고사’라는 글자가 없을 뿐입니다.

한 과목 한 과목 끝나면 과연 내가 맞게 풀었을까 하는 불안감이 들기도 하지만, 어차피 내 버린 OMR 그냥 잊고 편하게 다음 과목 봤습니다. 물론 쉬는 시간엔 굉장히 걱정했습니다.

수험표 뒤에 붙이는 답안지는 최대한 채워 오는 것이 좋습니다. 성적표 나오기 전까지의 정신건강에요.

탐구 영역까지 모든 시험이 끝나고 집에 돌아가는 길은 작년보다 홀가분했습니다.

다시 겨울

집에 돌아와서 떨리는 마음으로 저녁에 가채점을 해 봤습니다. 제 성적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성적이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이번엔 좋은 쪽이었습니다.

실감이 잘 나지 않았습니다. 수학에서 OMR 카드를 수정테이프로 몇 번씩 지우고 고치고 했는데 혹시나 테이프가 떨어지지는 않았을까, 잉크가 번지진 않았을까 하는 걱정에 성적발표 전날까지 불안했습니다.

그러나 쓸데없는 걱정이었습니다.

한국사를 제외하고 17수능에 비해 여덟 등급이 올랐습니다.

여름에 해이해지지 않았으면 전부 1등급도 가능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았지만, 그래도 정말 기뻤습니다. ‘재수하길 잘했어’를 되뇌었습니다.

노력해서 무언가 제대로 이루어본 적은 없었기에 의지를 갖고 생각하는 대로만 하면 이루어진다는 것을 배우게 됐다는 점에서 2017년 한 해는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 중에서 분명 필자에게 가장 의미있었던 해였습니다.

지금은 정시 원서를 접수하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잘 될 것 같습니다.

작년엔 이렇게 살았습니다.